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25 전쟁/전쟁의 전개 (문단 편집) === 보급 및 수송 === 보급에서도 UN군과 공산군은 압도적인 격차가 있었다. 전투기나 전차를 운용하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유류를 예를 들자면, 북한은 원산과 장진호 각 방면에 연간 12만 5천 톤의 정유 공장을 두고 있었고 루마니아를 통해 유류 10만톤을 구매해서 상당량의 유류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계산대로면 최소한 북한이 보유했던 유류는 20~30만톤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미국은 해상으로 실어나른 유류량이 무려 약 2,188만톤이었으니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양이다. 더군다나 미군은 미 본토와 일본의 군수 기지를 활용해 물자를 조달했다. 북한은 부족한 해군력, 제해권과 제공권의 상실로 인해 미군의 군수 공장을 타격할 수 없었다. 덕분에 UN군은 탄약, 부품, 유류 등 군수 물자를 비교적 안전하게 전선에 보급했다. 반면 북한은 미 공군과 미 해군의 타격으로 군수 공장들이 대부분 완파되었고 그나마 살아남은 공장들도 심각한 타격을 입어 중국에서 생산된 물자들을 지급받아 버티는 실상이었다. 게다가 북한은 처음 생산된 무기와 탄약, 유류를 2개월 분량으로 맞추고 있었는데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소모율이 너무 커지고 미 공군의 공습으로 병기고나 유류저장소가 파괴되면서 버티는데 한계가 있었다. 수송면에서도 당연히 미군이 훨씬 우위였다. 제해권과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미군은 미국 본토와 일본에서 병력과 무기, 물자를 보급수송선과 수송기를 이용해 안전하게 수송했고 해상쪽으로는 타격이 없던 부산항에 물자를 수송해 열차나 트럭을 이용해 운송했다. 반면 북한쪽은 빼앗긴 제공권으로 트럭이나 열차로 물자를 수송해도 공습으로 파괴되기 일쑤였으며 후에 소련이 17000대의 트럭을 제공했지만 길어진 전선과 부족한 유류, 미 공군의 공습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어 큰 의미가 없었다. 해상과 공중에서 보급받을 수 없어 열차를 통해 군수물자를 운반한 공산군이지만 이 역시 미 공군과 해군의 폭격으로 인해 철도가 파괴되고 운송이 차단되었다.중국군의 개입 이후 교량을 다시 만들어 공습을 막기 위해서 힘썼는데 한국 공군이 벌인 작전중 가장 큰 활약인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이 이때 실시되었다. 식량면에서는 미군은 안정적으로 전전선에 병사들에게 C레이션을 비롯한 전투식량을 나눠줬는데 UN군을 비롯해 포로나 상황에 따라서는 민간인들에게도 식사로 줄만큼 식량 배급이 잘됐다고 한다. 다만 낙동강 전선 방어전 당시엔 전선에 보급할 탄약, 국군과 피난민을 먹일 식량 수송만으로 수송쿼터가 가득차 1달치 식량을 저장하는 목표를 오랫동안 달성하지 못했다. 유통기한 지난 C레이션을 까보고 먹어도 된다 판정해 배급했을 정도로, 1일 수송량=1일 소모량 일 정도로 피말리는 상황이었다. 반면 북한군은 식량배급이 처참했다고 하는데 본래부터 북한 지역은 남한보다 농업 생산력이 뒤떨어지는 편이었고 북한 주민들로부터 [[애국미헌납운동|애국미]]라는 명목으로 쌀을 거둬들여 4만 8400가마를 모았다고 하지만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구매할 때 상당량의 쌀을 현물로 줬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군은 각 지역을 점령하고 점령지에서 강제로 식량을 공출했으나 이로인해 점령된 지역의 민심이 등을 돌렸다. 게다가 이런 방식의 약탈에도 한계가 있고 수송능력이 떨어져 병사들의 배급량은 형편없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